"우리가 특별히 잘못한 게 없는데도 대륙의 문명이 급격하게 변했을 때, 항상 위기가 옵니다. 한반도에서 오순도순 청동기 문명을 멀쩡히 누리며 살고 있는데, 대륙에서 철기병들이 내려오면 문명의 교체가 시작되는 것처럼요. 그때 우리는 철기의 엄청난 위력 앞에 절망과 고통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포노 사피엔스의 등장
‘포노 사피엔스'란 '스마트폰(smartphone)'과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인류)'의 합성어로, 휴대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새로운 세대를 말한다. 
이 같은 정의는 지난 2015년 3월 영국의 경제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에 게재된 '스마트폰의 행성(Planet of the Phones)’에서 처음 나왔다. 본문은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는 새로운 인류 문명 시대의 도래'를 말하며 '지혜가 있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에 빗대어 표현했다.



아이폰이 쏘아올린 큰 변화
2007년,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소비시장은 엄청난 변화를 맞게 된다.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이 생소했기 때문에 관련 업계에서는 큰 이목을 끌지 못 했다. 노키아나 모토로라 등 내노라하는 기업들도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하기 보다는 자체 브랜드를 강화하는 전략을 내세웠다. 
그 가운데 유일하게 스마트폰 개발에 들어간 삼성은 구글의 자회사였던 안드로이드와 손 잡고 최초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인 ‘갤럭시S’를 만든다.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IT업계 내에서 '전세계 1위’ 타이틀을 굳건히 지켜온 ‘소니’를 처음으로 앞서기 시작했다. 구글의 빅데이터에 따르면 2010년을 기점으로 삼성이 압도적인 검색량을 기록하며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아이폰이 쏘아올린 큰 변화인 셈이다. 
최근 몇 년간 세계시장은 포노 사피엔스의 주도 하에 새로운 트렌드에 발맞춰 성장했다. 이제는 글로벌 TOP10 기업 중 무려 여덟 개가 포노 사피엔스를 겨냥한 기업들이다. 



태초에 하느님이 호모 사피엔스를 창조했다면, 스티브 잡스는 포노 사피엔스를 창조해냈다. 스마트폰을 마치 신체의 일부처럼 여기는 인류, 포노 사피엔스는 불과 10년 사이 엄청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촉발시켰고, 이로 말미암아 인류 사회는 거대한 근간의 변화를 겪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니 블록체인이니 듣기만 해도 아리송한 기술의 변화와 더불어, 시장 생태계의 중심에 등장한 ‘신인류’로 인해 전 세계 비즈니스 질서와 자본의 무게가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문명의 교체가 일어나는, 바야흐로 ‘혁명의 시대’다.

지난 10년간 지상파TV와 신문의 광고수익은 거의 절반으로 떨어졌고, 검색 포털(네이버)과 유튜브의 점유비율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8년 유튜브의 동영상 점유비율은 무려 85%에 이르렀다. 금융은 어떨까. 2018년 기준 무인화서비스(인터넷뱅킹과 자동화기기)가 차지하는 업무비중이 80%를 넘어섰고, 지점 창구 처리 비중은 9.5%까지 내려갔다. 유통 역시 마찬가지다.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특별한 비즈니스 세계에서가 아니라, 이렇듯 우리의 ‘매일매일’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일상의 변화를 만든 근본 원인은 권력이나 자본과 같은 특정세력이 아니라 ‘포노 사피엔스’라는 신인류의 ‘자발적 선택’이다. 그리고 이 선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인류의 자발적 선택에 따른 이러한 변화를 우리는 ‘진화’라고 한다. 무서우면서도 기막힌 사실은 기나긴 인류의 역사를 봤을 때, ‘진화’에는 단 한 번도 ‘역변’이 없었다는 것.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돌이킬 수 없는 문명의 대전환기를 살고 있다. 막아서느냐, 받아들이느냐의 선택은 우리의 몫이지만 새로운 문명의 도래는 ‘이미 정해진’ 인류의 미래라는 뜻이기도 하다.







e-스포츠의 거대성장
지난 2017년 온라인으로 방송되었던 리그오브레전드(League Of Legends:롤) 월드컵챔피언십 결승전의 시청자 수는 무려 8천만명이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시청자수가 1천만명인 걸 보면 가히 어마어마한 수치다. 게임산업에서 관중의 존재는 더이상 낯선 현상이 아니다. 
롤의 제작사인 라이엇게임즈는 중국 텐센트의 자회사로, 국가별 프로리그를 창설해 축구나 야구처럼 보고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산업으로써 그 영역을 확장시켰다. 이렇게 텐센트는 세계 8위라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포노 사피엔스의 세상, The Four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Stern School of Business)의 스콧 갤러웨이(Scott Galloway) 교수는 2017년 <플랫폼 제국의 미래>를 통해 새로운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4대 기업에 관해 저술했다. 그는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을 'The Four'라 언급하며 이들이 어떻게 기존 회사들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는지 설명한다. 
아이폰을 탄생시킨 애플의 성공요인은 단연 ‘유희’다. 유희에 대한 인류의 욕망은 끊임없이 분출되며 새로운 자극을 갈망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 애플은 아이팟을 통해 음악을, 아이폰을 통해 비디오와 게임을 장악했다. 그리고 '앱(APP)’이라는 생태계를 구축해 새로운 타입의 유희를 이끌어내며, 디지털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구글은 인류의 뇌 활동을 재정의했다. 검색을 통해 다양한 지식을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고, 유튜브를 통해 모든 학습을 동영상으로 가능케했다. 교육체계를 텍스트 기반에서 영상 기반으로 바꾼 것이다. 
페이스북은 인류의 사회 관계망 형태를 재정의했다. 이제는 대화의 절반 이상이 메신저 앱을 통해 이뤄지고, ‘좋아요’ 버튼으로 타인과의 교감을 생성하는 사회가 됐다. 
아마존은 유통시스템 및 인류의 소비생활을 뒤바꿨다.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전 세계를 상대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매칭해 그들의 욕구를 해결해준다. 실제로 아마존은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공장에서 출고된 상품들은 고객의 집에 다이렉트로 배송된다. 



3콤보 : 디지털 플랫폼, 빅데이터, 인공지능
커피 한 잔도 스마트폰 앱을 통해 주문하는 세상이다. 모든 소비 문명은 디지털 플랫폼으로 전환 되었으며, 이 세계에선 ‘소비자가 왕’이다. 고객의 자발적 선택과 팬덤에 의해 성장하기 때문에 즉각적인 피드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포노 사피엔스가 남기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에 집중했다. 그는 ‘어떠한 데이터도 버리지 않는다’라는 모토로 '아마존 웹서비스'를 개발한다. 현재 많은 기업들은 아마존 웹서비스에서 분석하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만큼, 아마존 웹서비스는 아마존의 효자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아마존은 그간 쌓아온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영역에까지 확장한다. 고객 추천 시스템, 음성인식 기반의 인공지능 플랫폼 등을 개발하며 인공지능이 미래 시장을 지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 중심에는 단연 ‘고객 집착 경영’이 있다. 



앵프라맹스
앵프라맹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차이, 그러나 본질을 바꾸는 결정적 차이'라는 뜻이다. 
개념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1917년 'R. Mutt 1917’이라고 쓰인 소변기 '샘(Fontaine)’을 내놓았다. 이를 두고 당시 예술계는 혼란에 빠졌는데, 그는 "도저히 예술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더러운 변기도 사물을 보는 각도에 따라 얼마든지 예술품으로 인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로써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게 된다. 
이렇듯 미묘한 차이는 포노 사피엔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힘이 된다. 단순히 기능적인 관점을 넘어 디테일에 집착해야지만 성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