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 욕망이 팽배한 세계에서 점차 시간, 체험, 질 같은 비물질적 영역의 가치를 중시하는 쪽으로 변화하는 오늘날. 소비가 곧 행복이라는 환상이 깨진 세계에서 우리는 어디서 행복을 찾아야 할까?
‘삶의 방식’이 최후의 상품이 되다
오늘날 사람들은 상품 이상의 가치를 원한다. 예를 들어 상품을 둘러싼 이야기나 일상의 제안 같은 것. 실제로 우리는 각종 매체에서 ‘라이프스타일’을 언급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라이프스타일은 이미 거대한 소비 장르가 되었다.
일본 쓰타야 서점의 캐치프레이즈(광고 문구)는 ‘라이프스타일을 팝니다’다. 그중에서도 도쿄 다이칸야마에 위치한 ‘다이칸야마 쓰타야’는 다른 어느 서점보다 이 목적에 충실했고, 이상적인 라이프스타일 숍을 구현해냈다. 지난 2012년 문을 연 이곳은, 새로운 삶의 방식에 목마른 사람들의 오아시스 역할을 하면서 오프라인 서점의 위기 속에서도 월 1억 엔의 매출을 올렸다.
이 다이칸야마 쓰타야에서 가장 잘 팔리는 외국 잡지가 바로 『킨포크Kinfolk』다. ‘킨포크 스타일’이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라이프스타일 잡지의 대명사가 된 이 잡지의 편집장 네이선 윌리엄스는 『킨포크』의 콘셉트로 ‘스몰 게더링(Small Gathering, 삶의 속도를 늦추고 동일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조촐한 만남을 통해 문화를 공유하는 모임)을 꼽는다.
"우리는 더 ‘작은 모임’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로 눈을 돌려, 의미 있는 생활, 즐겁고 간편하면서도 숙고된 사고방식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이 잡지가 제안하는 대안적이고 친환경적인 삶의 방식은 소비사회의 새로운 수요로 자리 잡았고, 이에 질세라 모든 기업은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데 혈안이 되었다. 이것이 출판계에서는 라이프스타일 잡지의 범람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들은 추상적 거대 담론이나 실현 불가능한 이상을 좇기 보다, 눈앞에 보이고 직접 만질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려는 태도가 사람들 사이에서 자리 잡고 있음을 드러낸다. '물질에 대한 욕망'이 ‘삶의 방식’에 대한 욕망으로 옮겨간 것이다.
메이커 무브먼트
산업혁명 이전은 커스텀 메이드가 당연한 시대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커스텀 메이드는 자기 손으로 만드는 'DIY(Do It Yourself)'가 아닌, 이른바 'CIY(Create It Yourself)’로 변모했다.
이 같은 ‘메이커 무브먼트(Maker Movement)의 대두는 사람들의 물건에 대한 개념을 바꾸고 있다. 물건을 사기보다는 만들고, 돈으로 물건이 아니라 서비스와 정보를 구입하며, 물건을 사고파는 게 아니라 삶의 방식과 이야기를 팔게 된 것. 물건 구매 행위가 물건 제작 행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소비의 쾌락’이란 과거의 개념이 될지도 모른다.
물건이 사라진다
물건은 벽과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벽과 신체 사이에 있는 덩어리로서의 물건이 사라지고 있다. 손가락 한 마디보다 얇은 TV는 벽에 붙었고 블루투스 이어폰은 사람들의 귓속으로 들어갔다. 에어컨이나 스피커도 벽 속으로 들어가는 등 매립형 가전이 인기를 끈다.
이처럼 가까운 미래에는 벽과 신체 사이에 있는 덩어리로서 가전은 필연적으로 소멸할 것이다. 기술의 진보로 형태는 사라졌으나 기능은 그대로 남아 있는 이러한 제품이 생활을 단정하게 만들 것이다. 이는 ‘보유’의 개념을 없애기도 한다.
물건이 벽 속으로 들어가면 물건의 물질성도 줄어든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다이앤 코일은 이를 '탈물질화=무중량화’라고 정의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경제에서 가치가 있는 물건(우리가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대상)의 물리적 용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든, 유전자 정보든, 영화나 음악의 창조적 내용이든, 새로운 선글라스의 디자인이든, 경호원의 경비나 점원의 도움이든, 이미 가치는 공간에 존재하는 3차원 물체가 아니다."
공유경제의 확산
과거에는 고가의 물건이 지위를 나타냈다. 사람들은 소비의 상징인 집과 차를 통해 부와 권력을 내세웠다. 그러나 과밀화된 도심과 경기 불황, 인터넷의 방대한 양의 데이터는 사람들로 하여금 소비를 낭비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이와 함께 찾아온 것이 바로 ‘공유경제’다. 공유경제는 흔히 사무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 집을 함께 나누는 것 등 셰어 문화를 담은 포괄적인 개념이다. 한마디로 살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공유경제가 뜨는 것이다. 척박한 도시 환경이 사람들의 ‘생활 보호 본능’을 자극했고, 그것이 사람들의 공유 본능을 일깨웠다.
오늘날 도시민에게 물건·공간·생각을 공유하는 것은 도시에서 살기 위한 필수적 태도다. 심지어 여기서 더 나아가 아이의 교육과 육아까지 공유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근대 이후 희박해진 공동체 정신이 21세기에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공유’와 ‘공동체 의식’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도시민의 필수 덕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