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으로 ‘느슨하다’는 잡아맨 끈이나 줄 따위가 늘어져 헐겁다, 마음이 풀어져 긴장됨이 없다 등의 의미다. 이런 ‘느슨하다’는 말을 ‘관계’ 앞에 붙이면 서로 연결은 되었으나 아주 긴밀하거나 끈끈하지 않은 관계, 즉 ‘따로 또 같이’가 좀 더 원활한 관계를 말한다.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의 장점은 일부 취하되, 그런 연결이 주는 부담과 복잡함을 덜어 내겠다는 태도가 ‘느슨한 관계’를 만들어 냈다. 집단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다소 이기적인 태도로 보이지만,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태도다. 약한 연결, 약한 연대라고도 할 수 있는 이것은 기존의 관계에 대한 재해석과 변화를 요구한다. 엄밀히 말하면, 기존의 관계와 연대가 가진 문제의 대안으로 느슨한 연대가 등장한 것.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결혼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다. 결혼관이 바뀌면 가족관이 바뀌고 출생과 자녀에 대한 태도도 바뀔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유럽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미국을 거쳐 우리도 그 변화에 접어든 것이다. 시기가 늦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가 전통적인 결혼관과 가족관을 상대적으로 오래 고수해 온 사회라는 뜻이다. 그래서 결혼과 가족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세대 차이가 크기도 하다. 엄밀히 말하면 세대 차이보다는 시대 차이가 더 맞을 것이다. 과거의 관성을 고수하려는 측과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측과의 관점 차이가 빚은 충돌이기 때문이다.
느슨한 연대는 단지 가족과 연애, 사람들 간의 관계 얘기가 아니라 직장, 조직 문화와 주거 환경, 부동산과 도시에까지 영향을 미칠 중요한 트렌드 코드다. 단순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의식주를 넘어 삶의 방향과 가치관의 변화에도 영향을 주고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변화를 초래하는 데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느슨한 연대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 즉 메가트렌드로 앞으로 점점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결혼하긴 싫지만 혼자 살기도 싫은 사람들
2030년이 10년 앞으로 다가온 지금, 결혼이 당연한 시대는 끝났다. 이미 유럽에서는 동거가 결혼을 대체하는 새로운 주거문화로 자리 잡았고, 우리나라 역시 1인 가구 및 비혼주의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혼인률 감소=가족의 해체’는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들은 가족이 갖는 번거로운 룰의 해소를 원한다. 시대가 변화하는 만큼 이들을 위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프랑스에는 결혼과 비슷한 파트너십 제도인 '팍스(PACs, Pacte Civil de Solidarite)’가 있다. 이는 결혼과 동거의 중간 형태로 새액 공제, 유산 상속, 출산 휴가, 육아 휴직 등 결혼한 부부와 동일한 권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혼보다 간편한 절차를 가지며 계약 체결, 해지 시 어떠한 법적 기록도 남지 않는다. 결혼한 부부와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지만 결혼에 따른 불편함은 없앤 이 제도는 프랑스 젊은층의 큰 호응을 얻었다. 2017년 팍스 커플 수는 19만3천여건을 기록했다.
이밖에도 1인 가구들이 함께 모여 사는 셰어하우스가 각광을 받고 있다. 개인적인 공간은 확보하면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이 새로운 세대들을 자극한 것. 이제 셰어하우스는 기업을 움직이는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SK그룹 계열사인 'SKD&D'는 2018년 셰어하우스 '테이블’을 문 열었고, 2019년 ‘직방'은 셰어하우스 전문 업체인 ‘우주’를 인수했다. 그야말로 돈을 벌어다주는 사업인 것이다.
겸업의 시대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겸업'이 늘고 있다. 일본의 대표 경제 일간지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2019년 5월 일본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된 대기업 120개사의 부업 허용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절반이 허용하고 있었다. 부업 허용에 긍정적인 기업까지 합친 비율은 무려 78%다.
이렇듯 기업에서 겸업을 반기는 이유는 고용 유연성에 있다. 평생 직장이 사라진 지금, 언제든지 직원을 고용하거나 해고해도 기업 입장에서는 덜 부담스러워진다. 노동 시간은 줄고 생산성은 높이는 워라밸 문화도 비슷한 맥락이다.
밀레니얼 부모와 함께 자라는 아이들
2030의 밀레니얼 세대 중 일부는 이미 부모가 되었다. 역사상 가장 수평적인 부모상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된 그들은 인류의 첫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이자 개인주의 속성이 강하다. 또 수동적 학습보다 자기주도적 학습을 추구한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세대가 바로 알파세대다. 알파세대는 Z세대의 다음 세대로, 2010년 이후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그들은 막강한 소비력을 가지고 있으며,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소셜 미디어를 통해 콘텐츠 생산자 및 소비자로서 두각을 드러낸다.
매년 줄어드는 출생률과 달리, 키즈 산업 규모가 성장하는 이유다. Z세대의 부모들인 밀레니얼 세대는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저축보다는 당장의 쾌락 또는 경험에 대한 투자에 적극적이다. 또 유로 콘텐츠를 당연하게 소비하기 때문에 아이를 위한 VOD 교육 서비스나 AI·AR 콘텐츠 이용이 자연스럽다.
불매운동과 유튜브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로 인해 시작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은 단순히 ‘안 사겠다’와 일본 여행을 ‘안 가겠다’를 넘어 ‘안 팔겠다’는 유통업계의 동참으로 이어졌다. 2019년 7월 기준, 리얼미터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불매 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세대는 20대(70.5%)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같은 시기에 한국갤럽이 실시한 세대별 일본 호감도 조사에서 일본에 호감을 가장 많이 가지는 연령대 또한 20대(54%)라는 점이다. 즉 20대는 일본을 호감으로 여기면서 한편으로 불매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 모순된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2018년 12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전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래희망 조사에서 교사, 의사, 연예인, 운동선수, 법조인과 더불어 유튜버가 희망 직업 10위 안에 들었다. 그런데 유튜버를 꿈꾸는 것은 비단 아이들만이 아니다. 수많은 직장인이 퇴근 후 유튜버로 활동하거나 채널 개설을 준비 중이며, 전국 초중고 교사 중 934명의 교사가 976개의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 불매 운동과 직장인 유튜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 배경에 ‘느슨한 연대’ 트렌드가 있다. 느슨한 관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나 아주 긴밀하거나 끈끈하지는 않고, 서로 떨어져 있지만 필요하면 얼마든지 연대할 수 있는 관계다. SNS를 통해 느슨한 관계를 맺는 것에 익숙한 1020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드러내는 데 적극적이다. 불매 운동에 적극적이거나 유튜버를 꿈꾸는 것은 이 때문이다. 평생직장과 종신 고용이 사라진 오늘날, 직장인과 기업의 관계 또한 예전처럼 ‘가족’ 같지 않은 느슨한 관계다. 또 다른 활로를 원하는 직장인과 유연한 인재 활용을 원하는 기업의 요구가 직장인 유튜버를 탄생시킨 것이다.
‘나혼자 산다’나 ‘미운 오래 새끼’는 공중파의 간판 예능이다. 두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스타들의 싱글라이프를 보여주며,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싱글의 삶 또는 그 외로움을 예찬한다. 이는 1인 가구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